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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쓰는 이야기

서평 : 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서평 : 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021)

커리어 그리고 가정 책 표지
 

이 책은 미국의 대졸 여성이 지난 100년간 커리어를 성취하는 것과 아이가 있는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어떤 방식, 어떤 전략으로 이 두가지를 성취해 왔는지를 시대적 흐름과 함께 개괄하여 분석하는 한편, 대졸 여성과 대졸 남성 간의 임금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클라우디아 골딘이라는 경제사학자이자 노동경제학자인데,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하버드 경제학과 최초 여성 종신 교수이며 전미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고 한다. 제목을 보고 나는 이 책이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 내에서 어떻게 얽히고 설킨 편견, 차별, 문제점을 마주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그에 대항해 여성들이 어떻게 투쟁해왔는지를 다루는 책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책이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제목이 잘 반영하지 못한 사례인 것 같다.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k한녀 출신으로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굉장히 기대가 컸지만, 다 읽고 난 감상은 그 기대에는 못 미치고 저자의 주장에 의문이 남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어서, 이번 글에서는 그 점들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전체적으로 개괄하자면,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책에서의 모든 분석은 '대학을 졸업한 미국인 여성'으로 한정한다. (실질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중산층 백인 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1장은 성별 소득 격차(gender earnings gap)이 90년대 이후로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이는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책이 노동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일 줄 알았으나.. 중반부는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가, 8장이 되어서야 다시 이 주제로 돌아온다. 2장에서는,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대졸 여성들이 커리어를 추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패턴을 시대적으로 분석하면서 시기별로 총 다섯 그룹으로 나눈다. 3~7장은 이 다섯 그룹을 순서대로 살펴보고, 8~10장은 1장에서 얘기한, 탐욕스러운 일과 성별 소득 격차와의 관계를 더 설명하는데, 이때는 전체 대졸 여성을 대상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MBA학위가 있는 여성, 의사, 변호사, 약사, 수의사 등 전문 학위가 있는 사람들 위주로 분석의 범위가 좁아진다. 이 점이 이 책의 여러 문제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2~7장에서의 시대별 그룹 분석은 "모든" 대졸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설명을 해놓고는, 책의 중점적 주장을 다루는 8, 9, 10장에서는 대졸 여성 중에서도 다시 더 일부인 전문 석박사 학위가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바탕으로 논점을 만들어 나간다.

이 책의 용어 정의에 대한 의문점들

가장 먼저, 중요한 두 개념인 가정과 커리어를 이 책에서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보려고 한다.

저자는 '가정(family)을 이루는 것'을 '아이를 낳는 것'으로 정의한다. 나는 이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하고 모부와 독립된 집에 살면서 강아지 혹은 고양이와 산다고 생각해보자. 통념적으로, 이 사람을 보고 '가정이 없다' 혹은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이가 있든 없든, 원가족에서 독립된 주거를 이루고 살면, 그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이룬 것으로 여겨지는데.. 정말 이상했다. 여성이 '가정'을 이루는 패턴 혹은 '가정'과 커리어를 추구하는 패턴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그 정의를 '아이를 낳은 것'으로 할 것이라면, 그냥 여성이 출산을 하는 패턴, 혹은 자녀를 가지는 패턴이라고 명명해야 하는 것 아닌지? 그렇다면 책 제목도 『커리어 그리고 유자녀』가 더 알맞을 것이다. 보통 비슷한 연구들에서도 '가정'을 이렇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사용한 "커리어"의 개념에도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설명하기를, "'커리어'는 생애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되며 당사자가 열망하고 추구하는 종류의 일에 고용된 상태로, 그 직업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pp. 44)고 했다. 이에 반하는 개념으로 '일자리'를 제시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당사자의 정체성이나 삶의 목표가 되지는 않"고 "종종 단지 소득을 얻기 위한 수단"(pp. 44)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이 연구에서, 커리어가 있는 여성가 없는 여성을 구분할 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현 직업이 열망했던 직업인지, 자아 정체성 구성에 영향을 많이 주는지 등을 물어본 설문 결과로 분류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저자가 데이터를 분류할 때 사용한 방식은, 동연령대의 남성들의 25퍼센타일(아래에서 1/4) 소득을 기준점으로 잡아, 어떤 여성의 소득이 이보다 높게 지속되면 (더 정확히는, 5년 간 3번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번 이상 이 기준점을 넘으면) "커리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남성 소득의 25퍼센타일과 여성 소득의 중간값(50퍼센타일)이 매년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득이 여성의 상위 절반이면 "커리어", 하위 절반이면 "일자리"로 여긴 것이다. 후에 저자는 다시 커리어라는 개념을 이렇게 설명하는데 -- "커리어란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고용 상태여야 하고 근로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pp. 409) --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앞에서 설명한 커리어의 개념(자아 정체성을 추구하는 데에 중요한 일)에는 소득은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득이 낮아도 "장기적으로 지속되며 당사자가 열망하고 추구하는 종류의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저자가 "근로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일자리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싶었다면 '커리어' 대신, 그냥 더 명확하게 '고소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면 됐을 것 같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제목은 『고소득 그리고 유자녀』가 되었어야 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암묵적 가정(assumption)에 대한 의문점들

그리고 책에서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기본 가정(assumption, 假定)으로 (1) '커리어'를 모든 여성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겼고, (2) 모든 여성은 남성과 결혼하거나 결혼을 아예 하지 않는 선택지 두 가지를 가지고 있고, (3)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family, 家庭)을 당연히 둘 다 추구하고 싶어하며, (4) 커리어를 추구하는 것과 가정을 이루는 것(아이를 가지는 것)을 가치판단적으로 '더 좋은'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 명시되지 않은 암묵적 가정들이 매우 불편했는데, 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을 졸업한 사람만이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학 학위가 없어도 고소득 직종에 종사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어야 하고), 대학 학위가 없어도 본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애초에 연구 대상을 대졸 여성으로 한정했다는 점은, 교육적 수준에 의거한 차별적 시선을 내포한 연구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여성이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남성과 결혼하는 것과 결혼하지 않는 것 외에 여성과 결혼하는 선택지도 있다. 당연히, 이성애자 여성이 동성애자 여성보다 수가 많겠지만, 이 책에서 제외된 이들이 누구인지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점이 매우 불편했다. 수적으로 다수여서 데이터 분석을 하기 편한 점은 이해하고, 이 책이 1890년대 출생의 여성들 부터 다루기 때문에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을 다루므로 여성과 결혼한 여성들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거라는 점도 이해하지만, 적어도 이런 점이 이 책의 한계라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추후 개선의 필요성을 명확히 적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모든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family)을 둘 다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모든 사람의 당면한 과제가 아니며, 가정을 이루지 않을 권리,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가 여성들에게는 있다. 이 부분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까 싶기도 했다. 비혼과 비출산이라는 의제가 최근 몇년 떠올라 여성의 투쟁거리가 된 한국과는 달리, 미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매우 가족중심적이기 때문에 더 당연히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이 안정되고 성공한 삶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싶었다. 

이 부분은 네 번째 가정(assumption)의 문제점과도 이어지는데, 가정(family)을 이루는 것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고, 커리어를 추구하는 것은 커리어를 추구하는 것이지,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정을 이루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아니며, 커리어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의 '이상적인 가정상'이 대가족에서, 둘만 낳아 잘기르는 것에서, 세자녀를 낳으면 애국하는 것으로 계속 변해온 것처럼 '가정' 자체는 불변하는 진리로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본성 같은 게 아니고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요소다. 커리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직업들이 '더 성공한 직업'으로, 혹은 단순 일자리가 아닌 '커리어'로 여겨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식의 산물이고 특정 사회에서 임금, 조세제도, 사회복지제도 등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복지가 잘 되어있고 소득세율이 높은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고소득 직업을 얻고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잘 된 사회과학 연구라면 이런 것들을 기본 가정으로 두는 대신,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책의 전반부 : 미국 대졸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의 측면에서 지나온 궤적

저자는 아래와 같이 시대를 다섯 개로 나누어 집단을 구분한다.

  • 집단 1 : 출생 1878~1989, 대학 졸업 1900~1920. 가정 또는 커리어, 양자택일.
  • 집단 2 : 출생 1898~1923, 대학 졸업 1920~1945. 일자리, 그다음에 가정.
  • 집단 3: 출생 1923~1943, 대학 졸업 1945~1965.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
  • 집단 4 : 출생 1943~1958, 대학 졸업 1965~1980. 커리어, 그다음에 가정.
  • 집단 5 : 출생 1958~1978, 대학 졸업 1980~2000. 커리어와 가정 모두.

집단 1의 여성들은 가정을 선택한 여성들은 가정만을 가졌고, 커리어를 선택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고 결혼도 많이 하지 않았다. 저자는 집단1에서 비혼, 비출산 비율이 높은 것은 집단 1의 여성들이 이후 세대와는 다르게 결혼을 선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장벽과 제약"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세대에 걸쳐서 결혼에 대해 동일한 선호를 가졌다고 가정했다.

집단 2의 여성들이 살았던 시대는 사무원, 타자수, 경리부기원, 속기사 등의 단순 사무직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노동 시장에서 "수요 증가"는 고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공급 증가"는 일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이 이런 일자리로 진출하게 된다. 동시에 결혼 연령이 늦어졌지만, 결혼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기혼 여성의 고용을 금지하는 규제가 확대되었다. 기혼 여성 고용 금지 제도의 근거는, 실업률이 높고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남편에게 부양받을 수 있는 기혼 여성 대신 다른 사람들(남성 또는 비혼 여성)에게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집단 3의 시대에는 여성들이 결혼을 아주 일찍하고, 출산도 일찍하며, 대체로 많은 자녀를 낳았다. 이 시기의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키울 때가 되면 대대적으로 노동시장을 떠났다가, 아이가 크고 나면 교직이나 사무직 등을 통해 다시 노동 시장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대학을 다닌 1940, 50년대는 미국에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증가하던 시대였고, 10명 중 6명이 교사 자격증을 따는 등, 많은 학생들이 가정과의 병행이 가능한 직종을 선택했다. 저자는 이 시기의 대졸 여성들이, 육아로 경력단절 후에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한 직종(교사, 간호사, 사회 복지사 등)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가정을 먼저 꾸리고 나서 그 다음에 일자리를 갖기로 계획"했다고 해석한다. 이 주장의 근거로 이 시기의 여성들의 설문 답변을 보면 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이 실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실제로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를 원했을지, 아니면 여성이 결혼을 해야만 했고 출산/육아로 인해 경력단절 시기를 가졌어야만 했던 사회적, 구조적 압박이 있지는 않았을지에 대해서는 저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모든 여성이 주체적으로 출산을 인생 계획에 포함시켜 실천했다고 치부한다.

집단 4 시기에는, 결혼 연령이 급격하게 늦어지는 변화를 겪었다. 집단 4는 미국에서 끓어오르던 여성 운동과 함께 자란 세대이며, 피임약이라는 "조용한 혁명"과 함께 자신의 커리어를 먼저 추구하는 동안 출산을 미룰 수 있었다. 여성들이 커리어 지향적으로 변화했고, 선택하는 직종도 달라져서 경영, 로스쿨, 치의학 등의 고소득 전문직 커리어를 추구한 첫 세대였다.

집단 5는, 집단 4의 여성들이 "커리어를 위해 출산을 미루다가 너무 늦어 영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을 교훈 삼아 커리어와 가정 중 둘 중 하나를 미루는 대신 커리어와 가정을 젊은 나이부터 신중하게 계획하여 추구해나갔다. 나이와 임신 가능성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생겨났고 보조 생식 시술이 발전함으로써 집단 5의 여성들은 출산도 커리어와 함께 추구할 수 있었다. 집단 5의 첫 출산 연령은 집단 4보다 늦었지만, 종국에 아이가 있는 여성의 비중은 집단 5가 훨씬 높았다. 커리어와 가정(유자녀)를 모두 "성취"한 비율은 집단 5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이 출산 후에는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남성보다 낮은 소득을 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여성이 둘 다를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 보조 생식 기술의 도움을 강조하는데, 보조 생식 기술이 여성의 신체에 얼마나 큰 부담을 가하는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점이 아쉬웠다.

출산을 하지 않은 것, 혹은 출산을 미룬 것이 커리어를 추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용이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저자의 가치판단을 계속해서 엿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시대별 흐름을 나눠서 본 것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역사적 맥락이 많이 다르다보니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우리 엄마 세대, 할머니 세대, 그리고 내 세대는 이 집단 중 어디에 들어갈지를 생각하며 읽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20세기에 미국이 지나온 역사는 당연히 한국과 아주 달랐고, 한국의 여성들을 이 집단에 바로 대입할 수는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성의 주체적 선택"이라는 저자의 관점

결혼을 일찍하고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그렇게 했다고 해석할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를 가지지 않은 여성 또한 자신의 선택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시대에 태어난 어떤 여성이 결혼 혹은 출산을 했거나 하지 않았을 때 그것이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주변의 상황 (결혼/출산을 해야 한다는 압박, 혹은 커리어와 병행이 불가능하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함 등)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굉장히 일관되게, 결혼 혹은 출산을 한 것은 여성의 주체적 선택이고, 결혼을 하지 않거나 출산을 하지 않은 것은 커리어와 병행이 불가능했던 과거 시대의 환경 때문이며 시대의 진보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할 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로 위치하지 않기 위해 개별 여성의 삶에서 그들의 주체성을 인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선택을 내리기에 앞서 어떤 선택지를 가질지는 사회 구조가 영향을 주는데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얘기하지 않은 채 여성의 주체적 선택만을 이야기한다면 편향된 서술이라고 생각한다.

1950,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몇몇 장면만 봐도 그 당시의 성차별적 관점들 때문에 숨이 막히는데, 그 시기를 실제로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를 상상해보면, 그리고 그 시절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지금에도 크고 작은 성차별과 편견이 우리의 일상 곳곳 스며들어 있고 이것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개인의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 : 성별 소득 격차의 원인을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과 연결 짓기

미국에서 성별 소득 격차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꾸준히 줄어들었지만, 1990년대 이후로 2020년까지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이의 원인을 저자는 "탐욕스러운 일"에서 찾는다. 많은 커리어에서 노동 시장은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 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며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이런 종류의 일을 "탐욕스러운 일"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부부 둘 모두가 이런 "탐욕스러운 일"에 종사하며 가정도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성은 "탐욕스러운 일"에 종사하며 고소득을 받고 여성은 더 유연한 시간 유용이 가능한 일자리로 옮겨가는데 이런 일자리는 금전적 보상이 적어지기 때문에 성별간 임금에 격차가 생긴다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일"은 더 오랜 시간 일할 수록 시간당 임금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주당 30시간을 일하는 변호사와 60시간을 일하는 변호사의 급여를 비교하면 2배가 아니가 2.5배가 차이나는 것이다. 더불어, "탐욕스러운 일"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의 경력 단절도 급여에서의 큰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MBA 취득 여성들의 사례를 보면, 학위 취득 1년 후부터 13년 후까지 여성 중위 소득이 남성 중위 소득의 얼마만큼 되는가 비교했을 때, 무자녀인 여성들은 0.85~0.95 사이에서 계속 유지되는 반면 전체 여성을 합쳐서 보면 13년 후에는 0.65로 떨어진다 (여성 중위 소득이 남성 중위 소득의 65%였다는 의미이다). 13년 후 평균적으로 여성이 일을 쉰 기간은 1년, 남성은 6주였다.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여성이 49시간, 남성이 57시간이었다. 평균 1년의 휴직과 8시간의 주당 노동 시간 차이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음에도 큰 성별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가부장주의나 편견 때문이 아니라 여성 본인들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탐욕스러운 일"을 떠나 유연한 일자리로 옮기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는 현상은 아이가 있는 여성에게서만 나타나고 남편의 소득이 높을 수록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육아와 커리어를 양립하기 위해서 부부 모두가 유연한 일자리를 가지는 대신, 부부의 소득 합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시간당 임금과 승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탐욕스러운 일"에 남고, 다른 사람은 유연한 일자리로 옮겨가며 가정에서의 일을 더 담당하는 쪽으로 부부가 논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가 거의 항상 남자이고 후자는 거의 항상 여자인 것도 차별이나 편견 때문이 아니라 단지 논리적이로 합리적인 결정 때문인지를 저자에게 묻고 싶다.)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해결책으로 저자는 업무 유연성이 큰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그런 유연한 일자리가 더 생산적일 수 있도록 노동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제시한다. 팀으로 함께 일해서 서로가 서로의 대체 인력이 되어 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 유연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탐욕스러운 일"의 임금이 너무 높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은 교사, 간호사, 회계사 등에 많이 종사하고 남성은 경영자나 공학자로 많이 일하는 등의 직종 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도 성별 소득 격차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여성과 남성의 직종 분포를 동일하게 만들 수 있도록 여성들 사이에서, 그리고 남성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직종을 옮겨서 여남의 직종별 분포가 동일에지도록 만드는 사고 실험을 생각해보면, 전체 대졸자 여성 혹은 남성의 40%가 직종을 옮겨야 분포가 같아지는데, 이런 사고 실험으로는 전체 "성별 소득 격차 중에서 3분의 1 정도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3 분의 1은, 소득 격차가 아니란 말인가? 어떤 현상의 3분의 1을 설명할 수 있다면 무시할 만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별 소득 격차의 원인이 편견이나 차별 때문이 아니라고?

고소득의 탐욕스러운 일을 여성이 출산 후에 포기하는 것이 성별 소득 격차의 주된 원인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이 현상은 차별과 편견에 기반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어떤 상황에서 부부 둘 다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다면, 누가 풀타임으로 일하고 누가 파트타임으로 일할지를, 합산 기대 소득이 가장 높은 쪽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 부부의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이성 부부 중 남성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여성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가정 돌봄을 여성이 맡기로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합리적인 선택"일 수만은 없다. 이 현상이 성별 무관하게 벌어진다면, 즉, 출산 후에 남편은 풀타임을 유지하고 본인(여성)은 파트타임 혹은 더 유연한 일자리로 옮기는 만큼 남성들이 똑같이, 그들의 부인이 풀타임을 유지하면서 본인(남성)이 가정을 위해 유연한 일자리로 옮겨간다면, 그저 합리적인 선택들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현상은 성별과 매우 연관된 패턴을 가지고 있고,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여성이 가정에서의 온콜을 맡기 위해 유연한 일자리로 옮겨간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을 내리게끔 하는 데에 어떤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개별 선택들에 영향을 주는가를 물어야 한다.

또한, 저자는 연령별 성별 임금격차 자료를 대면서, 졸업 직후인 27세에는 성별 소득 격차가 0.9~0.95로 "비교적 비슷한" 반면, 이 격차가 나이가 들수록 0.65까지로 점점 커지기 때문에 성별 소득 격차는 차별 때문이 아니라 삶의 궤적 속 여성이 출산 후 휴직하거나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나는 0.9~0.95라는 중위소득 비율을, "소득 격차가 거의 없다"고 해석하는 대신, "출산 휴직 등의 요소가 없음에도 젊은 시절의 출발점에서 이미 차별받는다"고 해석하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정말 성차별이나 편견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사회초년생 시절의 소득에는 왜 격차가 있는가? 5~10%의 격차는 격차가 아닌가?

그리고 저자는 직종 간 임금 격차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직종 간 임금 격차로 전체 성별 소득 격차의 1/3을 설명할 수 있다면 이것도 작은 게 아니기에 오히려 아주 주효한 이유로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자는 "1/3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며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더 나아가 직종 간의 소득 격차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시 하지 않는다. 여성이 주로 많이 종사하는 직종인 교사나 간호사 등은 전통적으로 소득이 낮은 편에 속하는데, 이는 이들 직종이 '낮은 소득을 받을만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직종의 노동 강도가 낮은 것도 아니고 전문성도 많이 요구되는 이들 직종이 임금이 낮게 시장이 형성된 것은 이게 '여성들의 직업'이기 때문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임금, 노동의 형태, 사람들의 진로 선택 등은 불변의 진리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회 구조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직종 간 임금 격차의 존재는 성차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별과 편견(장애인 차별, 블루칼라 차별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졸 여성 ≠ 전문직 종사 여성

연구의 대상을 대졸 여성으로 한정한 것도 의문스러운데, 책의 후반부에서는 더 소수이자 더 특권층이라 볼 수 있는 전문직 고소득 직종에 한정하여 분석한다. 이 책의 8, 9, 10장에서 연구 사례로 드는 직종들은 MBA취득자, 변호사, 약사, 의사, 수의사, 일반 박사(PhD)이다. 많은 대졸 여성들이 대학원 학위 혹은 전문 학위 없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이런 여성들도 커리어 추구와 가정 사이에서 분투하며, 성별 임금 격차를 경험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1~7장까지는 대졸 여성을 대상으로 분석한다고 했으면서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연구 대상을 더 좁은 집단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연구대상으로 하는 집단이 일관적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펼치는 주장이 얼마나 신뢰 가능한지, 그리고 얼마나 일반화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배운 점들은..

미국에서 여성들의 거쳐온 삶의 궤적을 통시적 관점으로 바라본 점은 새로웠다. 20세기 미국에서 시대를 거치며 여성들이 어떤 삶의 형태를 가져왔는지 조금이나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

또, 차별과 편견이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이 아니라고 서술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렇게 노동 구조를 문제 삼는 관점은 이전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어서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높은 임금을 위해 직장에서의 항시대기조로 지내고 주당 50, 60시간씩 과로하는대신, 더 유연하게 일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은 유효하고 중요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