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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쓰는 이야기

제 2회 전쟁과 여성 영화제 후기 (1) <위안>

6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됐던 제 2회 전쟁과여성영화제에 다녀왔다. 프로젝트38이라는 미디어/영상 연구 단체에서 기획한 행사로,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이 행사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참여할 수 있었는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과 매끄러운 진행으로 이 행사를 알게되어 참석할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은 경험을 했다. (프로젝트38 링크)

더 보고 싶은 작품이 많았지만 체력과 시간의 한계로 두개의 영화, <위안 (Comfort)>과 <빵과 대지를 위해 (Of Land and Bread)>를 봤다.

<위안 (Comfort)> 2020 감독 이혜린

영화 <위안>은 일본군'위안부'에 비해 잘 논의되지 않는 한국군'위안부'와 미군'위안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해서는 보통, 그 ‘위안부’ 제도가 여성의 신체와 성을 물화하고 착취하였다는 데에 방점이 찍히는 대신 ‘피해자인 한국’의 처녀들을 ‘가해자인 일본’이 ‘범했으므로’ 일본이 쌍놈의새끼다, 라는 식으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많이 논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위안부’나 미군‘위안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꼬집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한국군’위안부‘들은 트럭에 실려 이동하면서, 한국군이 성과를 이루면 포상으로서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제공‘되었다고 한다. 미군’위안부‘들도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한 제도다. 일주일에 두 번씩 성병 검사를 하도록 하였고 성병 검사에서 탈락한 여성들은 강제로 수용되어 치료를 받아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미군 남성들에 대한 성병 검사는 일절 없었다.) 이혜린 감독이 GV에서 말하길, 60, 70년대에 국가공무원들을 가장 정기적으로, 가장 조직적으로, 가장 자주 만난 사람들은 이 미군’위안부‘들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체계적인 국가의 관리감독 (혹은 적극적 조장) 하의 시스템이었다는 거다.

여성의 신체와 성을 물화하고 착취한 것은 모두 동일하다. 복사 붙여넣기 한 듯이 동일한 시스템으로 여성을 한 데 모아두고 군인들의 ‘위안’거리로 ‘사용’했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실제로 한국군’위안부‘에는 “5종 보급품”이라는 이름이 붙었었다.

이 영화와 GV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미군 기지촌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당사자들의 모습이나 인터뷰로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완전히 지양하고  그대신 당사자들의 경험은 증언록에서 발췌한 것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택했다는 점이었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뷰는 오직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나 활동가들의 것만 사용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검은 화면에 뜨는 자막을 계속 읽을 거면 그냥 내가 증언록 책을 찾아서 읽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폐허가 된 기지촌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모습, 매미가 가열차게 울어대는 소리, 오랫동안 버려져 곰팡이 핀 침구와 그 밖으로 소복소복 쌓이는 눈, 그런 장면들을 계속 함께 보다보니보니 자막으로 나오는 경험담들이 더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저 일을 겪을 때에도 매미가 울었을까, 저 경험을 할 때에는 저 침구에서 어떤 냄새가 났을까, 영상만이 줄 수 있는 시청각의 자극과 함께 공감각적인 상상력이 자극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전에 읽었던 책이 많이 생각났다. <영미, 지니, 윤선: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 이경빈, 이은진, 전민주 지음 (링크)
이 책은 미군 기지촌 여성이었던 세 명의 구술집이다. 일반 구술집과는 달리, 작가들이 인터뷰 대상자들과 라포를 쌓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있고 당사자들의 증언이 거의 윤문되지 않고 당사자들이 말한 그대로 실려있다는 점이 좋았다.

혹 이 영화에 관심 가는 사람이 있다면, 조혜영 선생님과 이혜린 감독이 GV 때 “영상원 배급처에 문의하면 공동체 상영이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이 “영상원”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말한 것인지 한국영상자료원을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영상자료원을 보통 영상원이 아니라 영자원으로 줄여 말한다면 전자가 맞겠다..) 공동체 상영을 원하는 분들은 “영상원”에 문의를 해보시면 되겠다.

 

(원래 글 쓴 날짜 : 2024년 7월 2일. 블로그를 새로 팔까 하다가 그냥 원래 있던 블로그를 쓰기로 하고 글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