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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쓰는 이야기

『착취도시, 서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서평

『착취도시, 서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이혜미) 서평


도시빈민 공부 시리즈 #3

<착취도시, 서울>은 <가난한 도시 생활자의 서울 산책>(김윤영 저)와는 비슷한 듯 다른 도시빈민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일보 기자인 저자가 쪽방촌을 취재한 이야기와 대학가 불법쪼개기원룸의 실태를 취재한 이야기, 크게 두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쪽방촌 이야기
저자는 서울의 4대 쪽방촌이라는 창신동, 동자동, 영등포, 돈의동 쪽방촌을 취재했다. 쪽방 건물을 가지고 있는 집주인들은 대개 한 건물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여러 채의 쪽방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한 개인이 여러 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라도, 일가족의 구성원이 각각 한채씩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수십, 수백 칸의 쪽방을 세를 주면서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검은돈‘ 현금을 벌어들인다고 했다. 집주인들은 강남 부촌에 살면서, 쪽방촌에는 중간 관리인을 두고 월세를 받아먹는다고. 중간관리인들은 보통 그 쪽방촌에 사는 거주자 중 한명으로 쪽방에 공짜로 살거나 쪽방촌에서 공짜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등의 혜택 아닌 혜택을 받으며 중간관리인 역할을 수행하는 거라고 했다.

이미 수많은 건물을 가지고 있을 만큼 많은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 도시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람다운 주거지도 아닌 1평짜리 쪽방으로 월세 장사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겨운데, 그걸 한두칸도 아니고 수십 수백 칸을 가지고 월세 장사를 한다니. 이건 정말 불법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게 왜 합법인가, 법은 역시 가난한 사람은 등한시하고 돈과 힘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쪽방의 평당 월세는 타워팰리스의 평당 월세보다 많다고 한다. 가난할 수록 더 비싸게 발 누일 곳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구조가 짜여있다. 정말 문제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정책은 쪽방 건물을 서울시가 전대하여 소방 시설이나 보일러를 교체해주는 등의 보수를 해주고 저렴한 가격으로 쪽방을 재임대하는 사업이었다고 한다. (’저렴한 쪽방 임대 지원 사업‘ 혹은 ’저렴 쪽방‘ 사업) 정책이 시행된 5년 동안 임대료를 동결하는 효과가 있었고 그래서 수요층에게 안정적으로 주거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전대의 방식으로 운영한 것이기 때문에 전대 기간이 끝나면 그 쪽방건물은 다시 원래 주인이 운영할 것이고 그러면 서울시가 세금을 들여 고쳐준 시설은 집주인의 이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 전대 비용으로 또 세금이 집주인에게 직접적으로 쓰이는 거라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런 전대 방식이 아니면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주거급여 제도가 그나마 빈곤층의 주거를 위한 복지일텐데, 이것도 세금으로 부여하는 주거급여가 월세라는 형태로 곧바로 집주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형태라 한계가 크다. 나라에거 주거급여를 인상하면 곧장 쪽방촌과 고시원의 월세가 그 인상분만큼 오른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흔히 들어봤다.

전대 후 재임대하는 ’저렴 쪽방‘ 사업이 그나마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진짜 필요한 정책은 전대 대신 이런 쪽방 건물들을 정부가 무상몰수하거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몰수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임대를 주는 형식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임대 아파트랑 비슷하지만 턴오버(회전율)이 높은 형태로, 공공임대 아파트와 홈리스 쉘터의 중간 형태로서 운영을 하는 방식으로서만 이 빈곤착취의 구조가 조금이나마 해소되겠다고 생각했다. ‘쪽방에서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느냐’, ’이런 비인간적 주거를 국가가 운영하는 게 맞는 것이냐‘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홈리스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이 현재의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에 쪽방을 무작정 없애버린다면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내몰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이 책에도 나와있고 7월 13일 김윤영 활동가의 강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므로 쪽방의 현 거주자, 현 수요자들을 거리로 내몰지 않으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돈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주머니로 ’쪽방 월세‘라는 명목으로 통째로 흘러들어가는 지금의 구조를 끊기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대학가 불법쪼개기 원룸, 신 쪽방촌 이야기

두번째 챕터는 한양대 뒤편 사근동의 원룸촌을 취재한 이야기다. 1인 가구 최저 주거 기준이 14 제곱미터(4.23평)라는데 그보다 작게 불법 쪼개기 리모델링을 한 원룸들이 대학가 주변에 판을 친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 대학 생활 내내 저렴한 기숙사에 살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미국의 월세 문제도 만만치 않지만) 서울의 좁디 좁은 불법 쪼개기 원룸 문제에서는 한발짝 벗어나 있었다.

저자가 취재한 불법쪼개기 원룸 건물들은, 9채로 신고가 되어 있는데 실질 가구는 30개로 운영하는 등 (우편함도 30개, 전기 계량기도 30개였다고 한다) 벽돌 한장 너비 조차도 아끼려 샤워실 벽을 유리로 설치하면서까지 한 건물 내에 최대한 많은 호수를 만들어 내기 위한 리모델링이 성행한다고 했다. 이런 불법쪼개기 리모델링은 부동산업자들과 영합하여 이루어지는데, 건물을 매입하려고 하면 부동산업자들이 ‘이거는 고치면 몇 채는 나오지. 그러면 월세는 얼마까지 받을 수 있지.’ 하는 식으로 소개해주는 식이라고 했다. 이런 불법쪼개기 원룸들은 원룸입대업 (주택) 대신, 고시원 같은 ‘다중주택’이나 독서실 같은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곳들도 많다고 했다.

이 챕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런 불법쪼개기 원룸 (저자가 신쪽방이라고 정의한 주거 상태) 에 사는 청년들이 스스로를 ‘주거빈곤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의 삶을 가르는 일차적 계급성은 ‘인서울 4년제 대학’이라고 분석했다.

“기다리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에, 대부분 현재의 빈곤을 직시하지 않고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저당 잡힌 미래‘를 기반으로 실제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쪽)

사실 내 주변에도 대부분이 이런 인식을 가진 것 같다. 근미래에 고소득 정규직을 가지고 더 나은 주거를 가지게 될 거라 생각하거나 원가정(부모님)은 ‘정상적’인 아파트에 주거하므로 (부모의 부를 자신의 부로 여겨) 자신이 ‘임시로’ 나와있는 이 원룸이나 고시원은 자신의 ’진짜 주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4년제 명문대를 나왔기 때문에 미래에 고소득 정규직을 가진다거나 부모의 부를 물려받는다거나 하는 것은 내가 주변에서 보는 대학 동창들 대부분에게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내가 ’주거빈곤층’ 혹은 ‘빈곤층’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자(근미래에 고소득 정규직을 가질 수 있다)는 나에게도 사실일텐데, 후자(원가족이 ‘정상’ 아파트에 산다, 혹은 부모의 부를 물려받을 수 있따)는 전혀 해당하지 않을 가난한 집에서 자라 학,석,박을 연이어 다니며 평생 저임금 학생이었다. 학, 석사 시절에는 대학교에서 싸게 제공하는 기숙사에 6년 내내 거주할 수 있었고, 미국 유학 이후에는 한국의 원룸보다 훨씬 넓은 집에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학,석사 기숙사 대신 원룸에서 자취한다는 대안 자체를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미국에서 사는 집도 미국이 땅이 넓어 최소 주거 기준이 한국과 달라 그렇지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는 주거에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가 ’주거빈곤층‘ 혹은 ‘빈곤층’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저자의 발견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런 걸 보면, 저자가 분석한 대로 ‘인서울 4년제 대학’의 계급성 뿐만 아니라 ‘원가족의 경제 계급’도 청년들의 현재 인식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일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이건 청년의 노동 문제와도 엮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가능성을 저당잡아 ’더 나은‘ 직장에서 첫 시작을 하고 싶다는 압박감으로 현재를 유예하며 구직을 하는 청년들의 세태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놓인 상황은 ’진짜‘ 나의 삶이 아니며 미래의 직장을 가지기 전까지의 ’임시‘의 상태라는 인식. 가난 문제는 주거 문제이면서 동시에 노동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노동에 대한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일보 기자인 저자가 쓴 본 책 <착취도시, 서울>과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인 김윤영 선생님이 쓴 <가난한 도시 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비교하며 함께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