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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쓰는 이야기

민달팽이유니온 <불온한 세입자들> 강연 시리즈 - 김윤영 강연

민달팽이유니온 <불온한 세입자들> 강연 시리즈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만보의 도시빈민 공부 시리즈 #4


민달팽이 유니온에서 주최한 <불온한 세입자들> 강연 시리즈의 하나인 김윤영 활동가의 강연에 다녀왔다. 강연에서는 일화 중심의 책 이야기 보다는 부동산 시장 및 합동재개발 정책 관련해 더 큰 구조를 볼 수 있게끔 하는 내용들을 주로 다뤘다.

강연을 관통하는 한 마디는, "개개인들은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선택을 하는데, 그 개개인들의 최선의 선택이 모여서 사회를 더 나쁜 곳으로 만든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재편되어야 할까? 우리는 그걸 어떻게 재편할 수 있는가?" 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집주인이 되어야만 편하고 안락하게, 적당한 삶의 질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 명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모두가 인생을 통해 체득한 진리다. 한국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 명제. 이 명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러니 나도 집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맹목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집은 제1의 투자 대상이 되어 '사는 (buy)' 물건이 된다. 새로 공급되는 집은 이미 자산이 있는 사람들, 집을 살(buy) 수 있는 자원을 이미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독점되고, '살 (live)' 집이 없는 사람들은 발 누일 곳을 찾아 계속 떠돌아 다닌다.

이는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 분배는 등한시 한 채 공급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거주할 사람들이 아니라 집을 구입할 사람들을 중심으로 판이 짜여있다. 그 중심에는 합동재개발 정책이 있다. 합동재개발 정책은 정부는 손 안 대고 코 풀 듯 민간주도로 새 주택을 건설하고 공급 할 수 있고, 건설회사 등 대형 자본은 그 과정에서 개발이익을 누린다. 어느 구역 토지나 주택 소유자의 3/4의 동의만 있으면 그 구역은 재개발 구역으로 설정이 된다.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 소유주가 있더라도, 그 건물(혹은 주택)은 그냥 재개발에 포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사유재산, 사유재산의 소유권인데 이건 국가가 나서서 그런 사유재산의 소유권이 박탈되는 걸 부추기고 용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세입자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이렇게 합동재개발로 지어진 아파트의 개발 이익은 건설 회사, 은행, 그리고 분양권을 살 수 있는 재력을 이미 소유한 사람들에게로 독점된다. 재개발에 투입된 공적 자원은 사적 자원으로 흘러들어간다. 공유 공간인 골목길은 아파트 단지로 편입되어 주민들이 독점한 공감이 된다. 그런 골목길로 다니던 마을 버스도 없어지거나 빙 돌아가도록 노선이 바뀐다 (실제로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재개발 후 그 동네로 다니던 마을버스의 노선이 우회하도록 바뀌었다). 각종 주택자금 대출을 지원하는 주택도시기금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지만, 집을 구매할 수 있는 형편을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간다. 흔히 복지 제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세수를 깎아먹는다'는 편견이 스며들어 있지만, 주택도시기금의 복지 혜택은 정확히 그 반대다. 역세권청년주택이라는 청년 대상 주거 복지 제도도, 역세권쳥년주택으로 운영 후 9-10년이 지나면 무조건 분양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분양하기 때문에 주거 복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 분양의 혜택을 받는 건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재력 혹은 대출에 대한 접근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독점된다.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개개인들은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선택을 하는데, 그 개개인들의 최선의 선택이 모여서 사회를 더 나쁜 곳으로 만든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재편되어야 할까? 우리는 그걸 어떻게 재편할 수 있는가?"

작가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넌지시, "손해를 끼치는 방식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고, 그렇게 해서 자산증식을 할 수 있다는, 가족 안에서 대대로 내려와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들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재개발 단지에 투자하고, 임장을 다니고, 전세사기 매물에 경매를 다니고. 그렇게 해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정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구조가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답이 없는 것 같다. 한국 (중산층) 경제는 부동산 시장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 종부세 등 다주택 소유의 인센티브를 깎는 방식의 세금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작가님은 한국사회에서 종부세 도입이 왜 어려웠는지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공공주택 제도를 강화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미국을 보면 미국도 집으로 월세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매년 내야 하는 재산세 때문에 집 대출이 남아있는 경우면 월셋집 한두개 놓는 정도로는 돈이 크게 남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개별 집주인이 월세를 놓으면 무조건 이득이 아니어서, 그렇게 무작정 다주택을 소유하고 세를 놓으려는 인센티브가 적다고 들었다. 또 미국 부동산은 언제나 우상향은 아니어서, 부동산이 제1투자처도 아니라고 했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미국이라고 백만장자나 그 이상의 부자들이 부를 독점하는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대신 미국의 중산층 경제는 부동산 시장 대신 주식 시장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그래서 주식이 너무 많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언제나 예의주시한다고도 들었다. 결국 미국은 세계1강국의 주식시장이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에 부동산이 (한국보다는) 덜 과열되고 다주택 규제도 가능한 건지.. 한국은 그렇게 안정적인 주식시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내수로 해결이 되는 부동산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건지..

책을 읽을 때는 이런 일들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충격과 죄책감이 컸다면 (결국 나는, 퇴거와 철거를 남의 일로 여기며 책을 읽었다는 뜻인 것 같다), 강연을 들으면서는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이 안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보다 강연을 들을 때 스트레스가 더 컸던 것 같다. 지금 나에게 당면한 가난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타개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도덕을 내려놓지 않는 것은 과연 가능한지, 그런 나의 개인적 삶의 투쟁과 동시에 사회적 변화를 어떻게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강연은 강북노동자회 건물에서 있었다. 그곳은 꿘의 천국?!!? 노동자 인권 관련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한 각종 행사 포스터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좋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런 공간을 방문하고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강북노동자회 건물 뒤편 골목길에는 고시원(원룸텔) 간판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