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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는 이야기

미워하는 사람에게 다정한 편지 쓰기 - 할머니에게 (5년 전 글쓰기 모임에서 "미워하는 사람에게 다정한 편지 쓰기"라는 주제로 썼던 글이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00이에요.이 편지를 써도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니까 제가 소리 내어 읽어드리지 않는 한 할머니는 이 편지 내용을 영영 모르시겠죠. 하지만 저는 서울집에 올라가도 할머니에게 인사조차 드리지 않으니까, 이 편지를 읽어드릴 일도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제 마음을 담아 할머니께 편지를 써요. 제가 인사를 드리지 않아도 할머니는 제가 집에 왔다는 걸 알고 계시겠죠? 인사를 드린다면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고 얼른 밥을 먹으라고 하시겠죠. 같은 집에 살면서 인사조차 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저는 할머니를 미워하기 때문이에요. 할머니를 미워해서 죄송해요.십 년 조금 넘게 제 방이.. 더보기
언제나 박대의 공간이었던 곳 예천. 아빠가 태어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 집이 있는 곳. 예천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는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씩 예천에 갔더랬다. 예천 시골집은 언제나 박대의 공간이었다. 산골 깊이 처박혀 있는 전통 깊은 종갓집에서 여자아이를 반겨줄 여력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그 딸아이가 9대 종손의 첫째니 더더욱 그랬겠지. 존재 자체가 박대의 이유였던 곳. 죽거나 병들거나 질린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빈집이 되었을 때에야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그곳을 찾았다.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풀과 나무가 차지했다. 사람이 심어줘야만 자란다는 감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 번성하고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풀은 한때 마당이었던 곳에 숲처럼 자라있었다. 이젠 아무.. 더보기
~~글쓰기에 대하여~~ (거창한 척 해보기) 소설 쓰기, 수필 쓰기, 논문 쓰기 꽤 오랫동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으로 품고 있었다. 전공 공부는 내가 먹고살려고 하는 것이고, 그건 차치하고서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어영역에서 (예, 저는 옛날 세대 사람이며 국어영역으로 바뀐 지 한참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ㅠ) 문학 지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항상 애를 먹었으면서도 현대소설 지문을 좋아했고, 대학은 모조리 공대에 지원하면서도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멋진 공학자가 되는 동시에 멋진 소설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둘이 다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소설가라는 꿈을 추구하기 위해 실제로 어떤 노력을 실천한 일은 별로 없고 생각에만 그쳤고,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는 것에.. 더보기
온라인 학회 참여 후기 - 미국 가족계획학회 (Society of Family Planning) 최근에 온라인으로 미국 가족계획학회의 온라인 학술발표회를 들었다 (Society of Family Planning (SFP) Annual Meeting). SFP 학회는 피임과 임신중지라는 두 주제를 필두로 하여 여성의 재생산 건강, 재생산 건강권에 대한 연구들을 발표하는 곳이다. (https://www.societyfp.org/annual-meeting/)나는 이번 학회에서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연구 분야여서 현재진행형인 연구들 발표를 들으면서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배우고 또 이 분야에 어떤 사람들이 있나 보려고 학회에 참가했다. 올해는 온라인으로 열려서 여행 비용이 들지 않고, 규모가 작은 학회여서 참가비에도 부담이 없어서 가능했다.이번 학회는 열심히 참가.. 더보기
일년 반만에 학교에 가게 된 건에 대하여 (feat. 팬데믹) 요새는 엄청 오랜만에 다시 학교에 가게 됐다. 지지난주에 개강했는데, 학교는 엄청 적극적이고 강경하게 대면 운영을 밀어부쳐서, 수업도 대면수업이고, 학과 건물에 대학원생 연구실도 다시 열렸고, 학교 다이닝홀(학식)도 정상 운영한다. 일년 반만에 대면 개강한 탓에 한꺼번에 쏟아져들어오는 새로운 인풋에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 덕분에 막상 공부하는 데에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 못했는데-- 이 글에서 개강 2주차까지 너무 널럴하게 보내버리며 이것저것 느낀 소회를 정리하고, 이제 돌아오는 주부터는 정신차리고 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게 살풀이를 해보려고 한다!미국은 지난 늦봄부터 천천히 “정상복귀”로의 움직임을 펼치다가 이번 여름부터는 거의 대부분이 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마스.. 더보기
재성운이 없는 사주를 가졌다네 하지만 나에겐 학당귀인이 있어 “사주 상 화기운이 없는 무재성 사주를 가지고 계세요”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내가 직접 문의한 사주풀이를 받아봤다. 그동안 엄마가 어디 사주 보러 다녀와서 너는 이렇댄다, 앞으로는 저렇댄다, 하고 전해주는 것을 흘려들었던 것 말고 내가 직접 사주풀이 의뢰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방학 마지막 주말이라고 옆옆주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넷플릭스 피어스트리트 삼부작을 어머나 저머나 쟤는 왜 저러나 평하면서 보고 있는데, 사주풀이가에게서 오픈카톡이 하나씩 오기 시작했다. 악마가 어쩌구 하는 미국의 민간신앙 세계관(뭐, 따지고 보면 기독교 세계관이긴 한데 나는 이게 미국의 민간신앙이라고도 생각한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보는 와중에 한국의 민간신앙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사주 풀이를 받아 보았네. 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