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 사는 이야기

~~글쓰기에 대하여~~ (거창한 척 해보기)

소설 쓰기, 수필 쓰기, 논문 쓰기

꽤 오랫동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으로 품고 있었다. 전공 공부는 내가 먹고살려고 하는 것이고, 그건 차치하고서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어영역에서 (예, 저는 옛날 세대 사람이며 국어영역으로 바뀐 지 한참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ㅠ) 문학 지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항상 애를 먹었으면서도 현대소설 지문을 좋아했고, 대학은 모조리 공대에 지원하면서도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멋진 공학자가 되는 동시에 멋진 소설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둘이 다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소설가라는 꿈을 추구하기 위해 실제로 어떤 노력을 실천한 일은 별로 없고 생각에만 그쳤고,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는 것에 그친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한때 습작 비슷한 글들을 썼을 때도 있었다. 석사 졸업하고, 미국 대학원에 붙고 나서 실제 입학까지는 한 학기 정도 남았을 때, 지역 글쓰기 모임에도 다녔고, 서울로 한겨레문화센터 소설 쓰기 강좌도 들으러 다녔다. 그때는 나름, 열정적으로 이런저런 글들을 썼고 소설 비슷한 글도 있었고 수필 같은 글도 있었고 그사이 어딘가에 있는 글도 있었다.


그때 썼던 소설 습작 비스무리한 글들이 얼마나 잘못된 글쓰기 방식으로 쓰인 글들인지 깨달은 것은 1년인지 2년인지가 지난 뒤 김봉곤 씨와 김세희 씨의 소설의 가해성에 대한 폭로가 나왔을 때였다. 그 일들을 보고 작가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일,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에 발붙인 소설이 그 소재가 된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지, 그 영향력을 처음 느꼈다. 반성했고, 소설이라는 글쓰기 장르에 대한 회의도 느꼈다. 나 또한 내가 주변 친구들과 실제로 겪은 일을 소재로 글을 썼고 그중에는 당사자가 읽었다면 기분 나빠할 만한 글도 있었다. 그 글들은 저 두 사람의 글처럼 퀴어인 지인을 아웃팅할 여지가 있는 글도 아니었고 모두가 읽을 수 있게 발표한 글이 아니라 내가 속한 소규모의 글쓰기 모임의 사람들만 읽은 글이었기에 문제의 크기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남의 인생 속 한순간을 내 마음대로 가져와서 내 마음대로 재단한 채 쓴 글이기 때문에 그 글들은 세상에 보여줄 수 없고 내가 썼던 습작소설 속 소재로 삼았던 친구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내가 몇 년간 모아왔던 '소설 소재' 메모장의 대부분은 쓸 수 없는 것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으면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대신 에세이를 읽고 쓰는 걸 즐긴 것도 아니다. 사실, 에세이를 진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수필집을 냈다고 해도 웬만하면 읽지 않는다. 에세이를 읽는 게 불편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별 대단한 인사이트도 아닌 걸 가지고 글을 쓰면서 참 대단한 자의식 과잉이다 싶은 글들이 너무 많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비대한 자의식이 독자를 숨 막히게 하는 그런 글일까 봐 너무 걱정되는데, 아마 높은 확률로 그 걱정이 맞겠지만 어쨌든 글을 쓰고 있다..) 두 번째로는,어떤 에세이들은 작가 본인의 삶이 얼마나 멋진 지를 은근슬쩍 자랑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있다 느껴져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순간마다 배가 아프고 나와 비교하게 되어서 읽기가 힘들었다. 이 정도가 나의 그릇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반지하의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비대한 자의식에 부대끼지도 않고 자기 삶의 멋지고 좋은 부분만 자랑하지도 않는 수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수필을 통해서도 독자에게 멋진 간접체험을 제공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책을 읽고서 마음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글을 토해내듯 쓴 게 바로 이 블로그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는, 이 블로그 에세이 첫 글, 사주 관련 글이다. (링크)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이북을 선물해준 친구 Y에게 치어스!)
또, 블로그에 공부 관련 글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담은 수필 글도 써서 올리자고 하니, 어디까지를 써도 되고 어디까지가 내가 쓰면 안 되는 글인지 모르겠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중에 온전히 나 혼자서 한 경험은 별로 없고 타인이 연루되었기 마련인데, 어떤 경험을 나의 시각 나의 버전으로 쓴다면, 그 경험에 같이 존재했던 사람이 기분이 나쁠까? 글에 타인을 조금이라도 언급하게 되면 그거, 괜찮은 건가? 본인에게 미리 보여주고 허락받을 수 있는 글만을 써서 올리자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어떤 경우든, 관련인의 허락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소재로는 글을 쓰지 말자 마음 먹었다.


더 어려운 것은, 나의 얼마만큼을 이 블로그에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블로그에 공개 발행하는 글에서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도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어떤 글감들은 자꾸만 삼키게 된다. 나는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얼마나 드러낼지에 대해 아주 확실한 선들을 정해놓는다. 이 사람에게는 나의 이런 부분을 이만큼 보여주고, 저 사람에게는 나의 저런 부분을 요만큼 보여주고 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그렇게 정해놓은 각개의 선을 딱딱 지키며 내 마음속 커튼을 쏙 열었다 닫고 열었다 닫기 때문에, 여기에 쓰는 글에 얼마만큼 드러낼 준비가 됐는지를 자꾸만 생각하면서 글을 삼키게 된다.


블로그에 누가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구글이나 다음 검색으로 흘러들어와서 나를 생판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의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통해 실친들이 올 수도 있고, 나를 실제로 알지만 친한 친구는 아니고 지인 정도 되는 사람들이 어쩌다 이곳을 발견할 수도 있고, 트위터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깐.. 그래서 나는 이 블로그에서 선을 어디에다가 그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생판 익명으로서 더더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있고, 아주 친밀한 친구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모습은 또 완전히 다른 부분이고, 적당한 거리감의 지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모습은 또 다른데 말이다. 자꾸만 가슴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떤 주제들을 다 뱉어내도 되는 것인지.


최근 어떤 책을 읽고 가슴이 뻐렁치는 어떤 감상이 막 솟구쳐 올라왔는데, 그걸 블로그에 쓰려면 내가 왜 그렇게 느꼈고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생각을 했나 하는 점들을 아주 많이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서 글거리를 꿀꺽꿀꺽 삼키고 일기장에만 털어놓았다. 지금도 거의 다 써놓고 블로그에 발행하지 않은 글이 하나 있는데 진짜 모르겠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도 비대한 자의식의 반증이라는 것을.. 리마인드하며 좀 부끄러워지네.


어쨌든. 원래는 이곳을 공부 관련 글이나 독후감만을 쓰는 곳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글을 잘 못 올리게 되어서, 그런데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종류의 글(수필)도 써서 올리면 좋겠다 생각하였지만 어떤 글을 써도 되고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자꾸만 생각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글을 쓰고 이런 고민을 할 생각에 논문을 써야 하는데. 내 직업은 논문 쓰는 일이고 그러니까 논문을 써야 내 인생에도 도움이 될 텐데. 이런 글 백날천날 써봤자 어떤 도움이 되나? 그저 내 비대한 자의식을 달래는 데에만 쓰일 뿐이지. 그럼으로써 논문 쓸 힘을 좀 더 얻는다면야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논문(도) 쓰자 좀!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