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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쓰는 이야기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은 사회를 더 아프게 한다

#3 평등해야 건강하다 서평 -- 불평등은 사회를 더 아프게 한다 


리처드 윌킨슨, 『평등해야 건강하다』, 김홍수영, 후마니타스, 2008


이 책은 "불평등이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저자인 리처드 윌킨슨은 사회 역학 (social epidemiology)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는 학자라고 합니다.

불평등할 수록 건강이 나빠진다
불평등이 높은 사회일 수록 각종 건강 지표가 나쁘게 나타납니다. 성인 사망률, 영아 사망률, 비만, 심장병 등 거의 모든 건강 지표에서 그렇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요건을 갖춘 국가들에서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가 절대 소득이 아니라 그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절대 소득이 올라도 건강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반면, 소득 불평등은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이 바로 그 예인데요, 미국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건강 수준이 하위권에 속합니다. 미국의 GDP는 가장 높은데 건강은 선진국 중 가장 나쁘다는 것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또 다른 증거로 미국의 흑인 남성과 코스타리카 남성의 평균 수명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흑인 남성의 평균 수명은 코스타리카의 남성보다 9년이 짧습니다. 절대 소득은 미국의 흑인 남성이 더 높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불평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위치하는 미국의 흑인 남성이 더 나쁜 건강 수준을 보입니다.

저자는 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경로로 사회적 관계의 질 악화를 말합니다. 불평등이 높은 사회에서는 살인률이 높고, 사회적 신뢰도가 낮고, 공동체 생활의 참여가 낮고, 적대감이 큽니다. 그러니까, 전체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면 그 사회가 가진 사회적 자본이 광범위하게 약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자본이 약화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건강에 악영향을 받습니다.  반대로, 좀 더 평등한 사회는, 그만큼 사회적 자본이 탄탄하게 쌓여있는 사회가 되고, 그게 건강 증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 왜 건강에 영향을 미칠까요? 사회적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기본적 특성 때문입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불평등과 건강 악화 사이의 관계와 기작을 제가 이해한 대로 도식화해 보았습니다.



불평등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건강을 나쁘게 한다
불평등이 건강을 나쁘게 하는 이유, 그리고 저소득 계층이 더 자주, 많이 질병에 걸리는 이유를 저자는 심리사회적 요인에서 찾습니다. "인간의 심리상태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며 인간 모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사회의 공통적인 관념, 그리고 자신의 감성적, 심리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심리사회적 요소로 인한 스트레스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에 영향을 주는 심리사회적 요소로 저자는 낮은 사회적 지위를 말합니다. 낮은 사회적 지위는 사람들의 모멸감과 수치심을 유발합니다. 가난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적은 돈으로도 어떻게든 생활은 영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해로운 것은 가난에 씌워진 혐오와 낙인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특성들이 오히려 "저러니까 가난하지" 라는 편견, 그리고 가난에 대한 정당화로 작용합니다. 이런 낙인과 편견이 모멸감, 수치심을 일으키고 이런 감정은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불안, 우울, 지지의 결핍, 모멸감은 그 자체로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고통이며, 건강 악화로 이어집니다.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해 유발된 만성 스트레스는 몸의 신체적 반응을 변화시킵니다. 교감 신경계를 자극하여 몸을 각성시키고 흥분시키며 각종 호르몬의 분비량을 뒤바꿉니다. 잠깐동안의 스트레스는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몸이 그로 인한 변화에서부터 회복할 수 있지만, 가난은 오랜 시간, 어쩌면 평생에 걸쳐 지속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한 변화로부터 회복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몸에 지속적인 무리를 주게 되어 인간의 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정리하자면, 한 사회의 불평등이 커지면 사회적 관계의 질이 악화지고, 악화된 사회적 관계의 질은 심리사회적 반응과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사회가 불평등하면, 그 사회의 건강이 나빠집니다.

불평등 개선을 위한 노력
그러면 우리는 이 결과를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요? 사회의 전반적인 건강을 높이기 위해서 불평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자는 불평등이 전혀 없는 평등한 유토피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저자가 든 예시는 대부분이 시장경제 사회에서의 사례였습니다. 미국과 스웨덴을 비교하거나, 미국 내의 50개 주를 비교하는데, 미국이나 스웨덴이나 모두 시장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는 미국 안에서도, 불평등 수치에 따라 가장 평등한 주인 뉴햄프셔와 가장 불평등한 주인 루이지애나의 건강 지표 사이에 큰 차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불평등의 아주 작은 개선으로도 건강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종업원 지주제(종업원에게 회사의 주식을 지분으로 배당하는 제도)와 노동조합을 이야기합니다. 정부의 직접적 개입 외에 근본부터 바꿔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업원 지주제와 협동조합을 통해서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노동자가 회사에서 통제권을 가질 수 있게 되면 불평등을 근원부터 줄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윌킨슨이 말한 이 방법들은 주식이 상장될 만큼, 그리고 노동조합이 구성될 수 있을만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방법이라는 한계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윌킨슨이 말한 것처럼 불평등이 조금만 개선되어도 건강 수준을 크게 바꿀 수 있다면, 한걸음 한걸음 뗄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윌킨슨이 말한 방법들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합의점을 가지고 다각도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이런 저런 고민을 해봤는데, 윌킨슨이 말한 대로 근본적으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자유경제에 대해 복합적인 규제를 가해서 자본이 자본을 낳는 힘을 약화시켜야만 할 것 같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론의 합의가 필요할 텐데, 너무나 요원한 일로만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재산세, 소득세 확대, 그리고 소득 규모에 따른 차등 조세 폭을 확대하는 등의 방법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윌킨슨이 '한계가 있다'고 말한, 정부가 직접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방식들입니다. 윌킨슨이 말한대로 근본적인 해결법을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더 공부하고, 고민하고, 상상력을 키워야겠습니다. 

아쉬운 점 - 젠더 관점의 부족
책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유인원 실험 예시를 많이 가져오는데, 그런 예시들이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인원 실험 사례들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인간 외의 다른 영장류에서 똑같은 생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의의가 있고 그 결과들은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와는 달리 실험적 조작이 가능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며 윌킨슨 나름의 근거를 대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잘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는 젠더와 인종 문제에 대한 시각의 한계였습니다. 역자가 역자 후기에서 서술한 대로, 윌킨슨은 젠더 불평등과 인종 불평등을 경제적 불평등의 하위 문제쯤으로 인식하는 듯 했고, 젠더 격차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서술에서 부대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젠더 불평등이 남성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논지를 펴는 부분이 특히 그랬습니다. 

더 불평등한 사회와 덜 불평등한 사회에서 건강 지표 격차가 남성에게 더 크게 나타나더라도, 만약 두 사회 모두에서 여성의 건강 지표가 남성보다 낮게 나타난다면, 과연 '불평등이 남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격는 차별은 가정 폭력이나 각종 성범죄의 타겟이 되는 것과 같이 아주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미묘한 차별이나 멸시, 진료실 안에서 (대체로 남성인) 의사들에게 증상을 호소했을 때 신뢰받지 못하고 별 일이 아니라는 대우를 받는 것, 의료 지식들이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 등, 삶의 모든 곳곳에 녹아있는데 저자는 여성이 어떤 차별을 겪어내며 사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보입니다.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겪는 다층적인 차별을 인지했다면, "젠더 불평등이 남성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저자가 가진 남성으로서의 시각을 반영한 단순화된 해석을 내놓는 대신 더 심도있는 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논문과는 다른 층위의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학자이자 사회역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의 불평등과 건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통해, 제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논문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와는 새로운 층위의 지식을 배웠습니다. 책은 한 편의 논문과 다르게, 수많은 논문들에서 말한 연구들을 저자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종합해놓은 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연구도 이 책에서 다루는 소득과 건강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한 주제여서, 제가 하고 있는 연구, 그리고 그동안 읽어왔던 논문들과 비교하고 연관지으면서 읽으니 더 의미있었습니다. 논문만 읽는 게 아니라 책도 읽으면서 한 연구주제에 대한 통시적 시각을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